건식법과 습식법을 통해 얻어진 커피 원두는 수출되기 직전 큐어링(curing)이라고 하는 마지막 단계를 거친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은색 막이 이 과정에서 벗겨지고 먼지와 불순물이 제거된다. 스팅커(stinker)라 불리는 기계를 사용해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결점을 지닌 원두도 솎아낸다. 도매상들이 선택하고 주문할 수 있도록 원두에는 품질에 따라 여러 이름과 등급이 매겨진다.
이렇게 길고 복잡한 가공 과정에도 불구하고 커피 원두는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의 모습이 아니다. 회색빛을 띤 회색에 풋내가 나는 상태이다. 인간으로 치면 학교 교육받지 않은 상태라고나 할까. 로스팅(roasting) 또는 배전이라고 하는 볶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커피 원두는 비로소 커피로 재탄생한다. 원두를 12~20분간 섭씨 180-250도에서 볶으면, 원두에 들어 있는 과당 등 당분이 캐러멜화하면서 커피 기름으로 알려진 물질을 만든다.
캐러멜화는 어린 시절 불량식품의 대명사 '뽑기'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설탕을 쇠 주걱에 담아 불 위에 올리면 설탕이 녹으면서 구수한 향기가 나는 갈색 액체로 변화한다. 이것이 캐러멜화이다. 잘 볶은 원두는 힘을 주면 손가락 사이에 부서지는 정도이며, 절대 태워서는 안 된다. 커피 원두는 로스팅의 정도에 따라 라이트 로스트, 시티 로스트 하는 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로스팅이 커피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커피 원두는 로스팅의 강도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얻는다. 로스팅은 대략 9가지 강도로 나뉜다. 라이트(light) 로스팅한 원두는 감미로운 향기가 나지만 커피를 끓였을 때 쓴맛, 단맛과 깊이는 느낄 수 없다. 노란색에 가까운 황토색을 띠며, 최약배전이라고도 한다. 시나몬(cinnamon) 로스팅은 원두가 계피(cinnamon)색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원두는 황갈색이며 신맛이 뛰어나다. 약배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약강배전이라고도 하는 미디엄(medium) 로스팅은 신맛이 중심을 이룬 가운데 쓴맛이 약하게 난다. 식사 중에 마시기에 적당하다. 미국에서 많이 소비된다고 해서 아메리칸(American) 로스트로도 불린다.
갈색이 완연한 하이(high) 로스팅에서부터 신맛이 엷어지며 단맛이 나기 시작한다. 중강배전이라고도 한다.
시티(city) 로스팅 또는 중중배전을 거친 원두는 맛과 향이 균형 잡힌 표준적 커피이다. 독일에서 특히 선호되어 저먼(German) 로스트라고도 부른다. 풀 시티(full city) 로스팅은 신맛이 거의 없으면서 쓴맛과 진한 맛이 강해서 진한 갈색 원두답다. 에스프레소 커피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중강배전이라고 한다.
프렌치(French) 로스팅은 프랑스에서 선호하는 진한 커피에 쓰이는 원두라는 의미로, 쓴맛과 진한 맛이 묵직한 느낌을 준다. 커피 기름이 표면에 끼기 시작하는 단계로 강배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두는 검은색을 띤 갈색이다. 최강배전, 이탈리안(Italian) 로스팅은 진하기와 쓴맛이 극대치에 달한 원두이다. 탄내가 나기도 한다. 에스프레소용으로 이전부터 애용되는 로스트이나, 최근에는 가벼운 풀 시티 로스팅에 조금 밀리는 추세이다.
로스팅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소비국에서 주로 이뤄진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로스팅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브라질을 제외한 대부분의 커피 생산국들이 로스팅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유럽과 미국의 소비자들은 커피 원두를 집에서 직접 로스팅하거나, 커피 상점들이 로스팅한 원두를 구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커피 시장은 이른바 로스터(roaster)라 불리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장악했다. 커피의 품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로스터들은 여러 지역에서 생산한 다양한 커피 원두를 배합해 상품화한다.
[커피의 모든것 -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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