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언제일까?
정확한 연도는 아무도 모른다. 1830년대 많이 들어왔던 프랑스 신부들이 마셨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기록된 바는 없다. 커피의 전래 시기는 19세기 후반, 특히 임오군란(1882년) 이후의 1890년 사이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
구한말 청나라를 통해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외국인들의 왕래가 늘어났고, 특히 임오군란 이후 미국, 영국 등 서양의 외교사절이 들어오면서 커피의 음다풍속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서양 외교관들은 조선 왕실과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커피를 진상했다. 커피의 향과 카페인은 왕족들과 대신들을 매혹시켰고, 곧 기호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커피는 한자로 음역 되어 '가배다' 혹은 '가비다'라 불렸다.
커피에 대해 기록한 최초의 한국인은 개화를 꿈꾸던 구한말 선각자 유길준이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던 그는 미국 유학 도중 유럽을 순방하며 보고 느낀 점들을 1895년에 발간된 [서유견문(西遊見聞)]을 통해 소개했다. 이 책에서 유길준은 1890년경 커피와 홍차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됐으며, 서양 사람들은 주스와 커피를 한국인들이 숭늉과 냉수 마시듯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한국인 커피 애호가는 단연 고종황제이다. 고종은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피신해 있던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맛보게 되었다. 고종에게 커피 맛을 선보인 사람은 러시아 초대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손탁여사이다. 손탁의 정확한 이름은 안토니에트 존다크로 독일 여성이었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후 러시아 공사관에 파천해 있으면서 식사는 물론 모든 수발을 맡길 만큼 손탁을 마음에 들어 했다. 고종은 덕수궁 건너편 정동 400여 평 대지에 회색 벽돌로 2층 양옥집을 지어 손탁에게 선물했고, 손탁은 이 집을 1897년부터 호텔로 운영했다. 이 집이 바로 구한말 외국인들이 사교장으로 모여들었던 손탁호텔이다. 손탁호텔은 아치형 창문이 줄지어 선 이른바 아케이드 양식이었다. 2층에는 VIP실, 1층에는 일반실이 있었다. 미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양, 러일전쟁 취재차 방한한 [허클베리 핀]의 작가 마크 트웨인, 훗날 영국 총리가 된 젊은 시절의 윈스턴 처칠이 손탁호텔에 머물기도 했다. 1층에는 일반실과 함께 레스토랑 겸 커피숍이 들어섰다. 한국 최초의 커피숍이었다. 독일 여성이 운영하던 커피숍이었으니, 어쩌면 크림과 설탕을 타 마시는 독일식 커피가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사랑받는 까닭이 이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고종은 궁중의 다례 의식에까지 사용하도록 했을 만큼 커피를 좋아했다.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사방이 트인 서양식 정자를 짓고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국 공사들과 연회를 갖기도 했다.
일반 민가에도 외국인 선교사, 상인들을 통해 커피가 파급되었다. 커피는 흔히 양 탕(洋湯)국이라고 불렸다. 1910년경에는 브라이상이라는 프랑스인이 커피를 홍보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이채롭다. 부래상이라는 한자 이름을 가졌던 이 프랑스인은 지금의 세종로 중부소방서 뒤편에서 나무를 팔았는데, 화살통 크기의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놓았다가 지하문과 무악재를 넘어오는 나무꾼들이 지날 때면 다가가 "고양(高陽) 부씨(富氏)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네고는 커피를 따라주며 흥정했다고 한다.
1919년 이후 명동, 충무로, 종로 등지에도 커피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명동의 '멕시코'처럼 다방 주인은 대개 일본인이었다. 그러나 커피값이 너무 비싸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돈 많고 서양 물 먹은 이른바 신식 멋쟁이들만 이 커피를 홀짝일 수 있었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 가수 윤심덕은 종로 다방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커피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45년 이후, 특히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이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커피, 특히 값싼 인스턴트커피가 대량으로 보급되었던 것이다.
[커피의 모든것 -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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