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의 원조가 누구냐'를 놓고도 싸우는 판에, 세계 최대의 기호 음료 커피의 원산지라는 커다란 영예를 놓고 논란이 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커피의 원산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에티오피아의 고산지대라는 설과, 홍해를 사이에 두고 에티오피아와 마주 보는 아라비아반도의 남부 예멘이라는 설이 있다. 에티오피아 설과 예멘 설은 모두 커피를 발견하게 된 상황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에티오피아 원조설의 주인공은 칼디(Kaldi)라는 염소 치기 소년이다. 2700여 년 전 어느 날, 당시 아비시니아라고 불리는 에티오피아 남서쪽 카파 지역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살고 있던 칼디는 자신이 키우던 염소가 잠들지도 않고 춤추듯 날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칼디는 양들이 숲속의 작은 나무에서 열리는 빨간 열매를 따 먹으면 흥분하고 기운에 넘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칼디는 자신이 직접 열매를 따 먹어 보았다. 그랬더니 온몸에 힘이 넘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게 아닌가. 칼디가 발견한 이 빨간 열매가 바로 커피였다는 전설이다.
예멘 측 전설의 주인공은 알리 벤 오마르 알 샤딜리라는 이슬람 사제이다. 오마르는 이슬람교의 일파인 수피교 사제로, 기도와 약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능력을 갖춘 자였다. 1258년쯤 정적들의 모함으로 죽음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이때 오마르는 붉은 열매가 매달린 작은 나무를 보았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이던 오마르는 이 붉은 열매를 따 먹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오마르는 이 열매가 알라신의 선물이자 축복이라고 믿었고, 이 열매를 달여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오마르의 소문은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퍼졌고, 그는 '모카의 성인'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2개의 전설 모두 각각 나름대로 그럴싸한 구석이 있지만, 사실 여부의 확인은 불가능하다. 커피 원산지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를 분(boun)이라고 부르는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커피음료가 나타나기 전부터 커피 열매를 그대로 먹거나, 씨앗을 빼고 껍질과 과육을 살짝 구워 끓인 음료를 마셔왔다. 커피 원두나 잎사귀는 요즘에도 에티오피아에서 귀한 약으로 여겨진다. 또한 북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들이 커피 과육을 먹었다는 아랍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러한 근거들로 미루어 역사학자들은 커피의 원산지를 에티오피아로 보고 있다.
그러나 커피를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시킨 것은 예멘의 무슬림들이라는 주장에는 누구나 수긍하고 있다. 술을 마실 수 없었던 무슬림들은 술 대신 카페인에 빠져들었다. 이 때문에 커피는 '이슬람의 와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슬림들이 커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커피에 관해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페르시아의 현대 무용담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마호메트가 졸음을 이기려 애쓰고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음료를 주고 갔으며, 이 음료가 바로 커피라는 이야기가 있다. 커피가 바로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은 [커피의 역사]에서 "무슬림들이 '사물의 좋은 특질을 잘 끄집어내고' '머리 아픈 논쟁'을 잘하는 것은 모두 아라비아 문명의 '냉철하면서도 정열적이고 침착한' 성격과 상통하는 것"이라면서 "이성에 대한 맹목적 추구와 구원을 간구하는 종교적 지성 주의의 교리 등 마호메트교의 전통적 특징은 커피 향기와 사촌지간이었다"고 적고 있다.
영어 커피(coffee), 프랑스어 카페 (cafe), 독일어 카페 (kaffee), 네덜란드어 코피(koffie), 이탈리아어 카페(caffe), 터키어 카베(kahveh)등 세계 각국에서 커피를 지칭하는 명칭도 카와(qahwa 또는 khawah)라는 아랍어가 어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티오피아어 카파가 커피의 어원이라는 설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카파가 에티오피아에 있는 지역의 이름일 뿐 아니라 에티오피아어로 '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람의 커피 문화가 베네치아 등 교역 파트너들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간 만큼 카와가 어원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커피의 모든것 -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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