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멕시코 커피 재배농민 6명이 2001년 5월 애리조나 사막의 따가운 뙤약볕 아래서 시체로 발견됐다. 2000년, 역시 애리조나 사막에서 사망한 멕시코 농민 14명 중 7명이 커피 재배 농민이었다. 멕시코의 커피 재배 농민들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커피를 재배해 봤자 수익이 남기는 커녕 오히려 빚만 늘어나는 절박한 현실에서 내려진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으로 밀입국할 수 있는 멕시코 커피 재배 농민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커피 재배 농민들보다 그나마 행복한 편일지도 모른다.
볶지 않은 초록색 커피 원두(green bean)의 가격은 2003년 3월 28일 파운드당 48.90센트. 1파운드면 대략 450g으로 커피 140잔을 추출할 수 있는 분량이다. 48.90센트면 600원쯤이니까 한잔의 커피를 뽑는데 4월이 채 안 드는 셈이다. 3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을 감안했을 때 현재 커피 원두의 가격은 실질적으로 지난 100년을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국제 커피 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IOC)는 추산하고 있다. 그나마 원두 가격이 바닥을 쳤던 2000년 파운드당 20센트에서 많이 오른 게 이 정도다. 1980년대 원두의 평균 가격은 파운드당 1달러 20센트였다.
커피 가격의 폭락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원인이다. 2001~2002(10월~9월) 커피 원두의 총생산량은 1억 1,300만 백(bag, 60kg). 여기에다 전 세계 창고에 쌓여 있는 원두 재고는 4,000만 포대로 추산된다. 원두 생산은 연평균 3.6% 증가하는 반면, 커피 소비는 1.5% 성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동안 커피 가격은 국제커피협정(ICA)을 통해 통제되어 왔다. 커피 생산국과 소비국이 사전 협의를 통해 생산국 당 쿼터만을 수출하도록 하는 방식을 적용, 높되 안정적인 가격 유지라는 ICA 목적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원두 가격은 파운드당 1.20달러에서 1.40달러 내로 통제되었고, 이 범위를 코르셋이라고 부른다.
코르셋이 비대해진 커피 시장의 덩치에 맞지 않아 불편하다는 불만은 1989년 무렵부터 터져 나왔다. 새로운 원두 생산국들이 등장했고, 쿼터 외의 물량이 음성적으로 흘러나와 시장 질서를 흐트러뜨렸다. 같은 해 세계 최대의 커피 시장인 미국이 ICA에서의 탈퇴를 선언했다. 이제 ICA는 유명무실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4~1995년에는 최대의 커피 생산국 브라질이 서리로 인한 큰 손해를 입게 된 것이다. 커피 가격은 폭등했고 너도나도 커피 생산에 뛰어들었다. 베트남이 커피 수출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즈음이다. 1990년 경제개방과 함께 베트남 정부는 농민들에게 지원금까지 쥐여주며 커피 생산을 권장했다. 10년 만인 2000년, 베트남은 1,500만 포대를 생산하며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으로 올라섰다.
[커피의 모든것 -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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