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커피가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를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커피는 의약품으로 이용되다가 오늘날처럼 음료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예멘을 비롯한 이슬람 세계에서 커피는 종교의식 또는 의학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으며 확산됐다. 커피는 담석, 통풍, 천연두, 홍역, 기침 등 놀랄 만큼 다양한 질병에 대한 치료제로 처방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주인이던 터키인들은 커피의 약효를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을 방문한 영국의 헨리 블런트 경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들은 (커피)가 잘못된 식습관, 눅눅한 잠자리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질병들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준다고 알고 있다. 이들은 코파(coffa; 당시 커피를 지칭하던 단어)를 아침저녁으로 상음한다. 이들 노인들은 무기력을 모르며, 어린이들은 구루병을 모르며, 단 아이를 가진 여성들이 커피를 마시는 데 대해서만은 약간의 논쟁이 있다. 이들은 특히 커피가 담석과 통풍 예방에 특효약이라고 믿고 있다." 17세기 유럽의 의학자, 화학자, 약초학자들도 커피를 몸에 이로운 약으로 여겼으며, 또 그렇게 일반인들에게 소개했다. 이러한 인식은 '지옥처럼 새까맣고 쓰기 이를 데 없는 이슬람 이교도들의 음료'인 커피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의 대륙 유럽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17세기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의학자 프로스페르 알피누스는 자신의 의학서적에서"(커피)는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에게 특효가 있다"고 적었다. 18세기 독일 의학자인 크리스찬 하네만도 "커피는 의약품"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하네만이 "담배를 처음 피우면서 역겹다고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건강한 입맛을 가진 이라면 커피를 처음 마시면서 먹을 만하다고 느끼지는 못한다. 설탕을 넣지 않았다면 말이다"라고 덧붙인 구절을 보면 커피를 그리 맛있거나 향기로운 음료로는 보지 않았고, 단지 건강에 좋은 약초쯤으로 여긴 것 같다.
2세기 로마 시대 소아시아의 고대 도시 페르가뭄에서 활동한 클라디우스 갈렌(Galen)의 이론을 추종하는 의사들은 사람의 체질에 맞춰 커피를 처방했다. 1,500여년간 "의사들의 왕자(Prince of Physicians)"라 불리며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았던 갈렌은 인체가 4가지 액체, 즉 노란 담즙, 검은 담즙, 점액, 붉은 피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이 4가지 액체가 각각 뜨겁거나 차가우며, 촉촉하거나 물기가 있는 등 온도와 습기라는 2가지 물리적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들 액체의 균형이 깨질 때 병에 걸리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므로 넘치거나 모자라는 부분의 균형을 맞춰 줄 수 있는 약품을 처방하면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음(陰)과 양(陽)의 조화가 깨진 상태를 병으로 인식하는 동양의 한의학, 그중에서도 사람을 4가지 체질로 분류하는 우리나라의 사상의학과 여러 가지로 비슷하다. 문제는 이들 갈렌파 의학자들이 커피의 성질에 대해 엇갈리는 주장을 내놨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커피가 차갑고 건조하다고 봤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뜨겁고 건조하다고 주장했다. 커피 과육과 원두가 서로 성질이 다르다는 주장과 같다는 주장도 대립했다.
[커피의 모든것 -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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